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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은 까말라야 한다.

타인의 의견도 존중하고 / 시대에 권력에 아부는 지식인이 아니다.

작성일 : 2020-11-19 12:21 수정일 : 2020-11-19 12:21 작성자 : 손상욱 기자 (wook3636@hanmail.net)

-‘어머니처럼 맞을 짓 마라, 타인의 자존심 존중해주는 것이 지식인의 책무’라는 한겨레 칼럼 -현대 지식인의 핵심 임무는 ‘기존 지식’이나 ‘현재 권력’을 쉴새 없이 까대 견제하는 일 이거든-‘너도 좋아요. 나도 좋아요’ 는 제한 생산물을 최대 합리적으로 나눠 먹던 황희 정승 시절 얘기

 

(위 사진은 본 기사와 무관함)

 

며칠 전 이곳저곳에서 <지식인의 책무>라는 한겨레 칼럼이 돌아다니면서 왈가왈부가 이어졌다. 글의 의도는 진중권 비판이라는 말이 있었지만, 칼럼에는 진중권의 ‘진’도 나오지 않는다. 따라서 그 깊은 의도까지 확인하려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하지만 이렇게 ‘맥락상의 해석’을 버리고 단순히 ‘글자 상의 해석’만으로 본다면, 이 칼럼의 결론이 매우 이상해진다. 이 칼럼에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비유가 나온다. 책을 많이 읽은 어머니를, 아버지가 말로는 못 당하셨기 때문에 부부 싸움이 벌어지면 결국 아버지는 폭력을 행사하시는 일이 많았던 과정을 자세히 묘사한다.

 

지식인이라는 설정은 즉 ‘지식’ 그 자체의 구성과 재구성에 목매는 사람이라고 설정할 때만 의미가 있다. 따라서 현실의 권력과 기존의 지식을 개 패듯 패고 다니는 것이 지식인의 책무가 된다.


논란은 칼럼의 결론이다. 글쓴이는 마지막 대목에서 진정한 지식인은 알량한 자기 지식을 열나게 떠드는 사람이 아니라 ‘타인의 자존심을 존중해주는 사람’이라는 결론을 맺는다. 이 결론을 아버지- 어머니 비유에 적용하면 결국 진정한 지식인의 책무는

 

(붙여 여기에 나오는 타인의 자존심을 존중해주는 사람을 진정한 지식인으로 말하는데 어느때 부터인가 포항 바닥 페이스북에서 행해지는 포항인들의 거친 말들은 포항사람들이 새겨야 할 대목이 아닌가 반문해 본다. 본 기자 글 삽입)

 

“어머니처럼? 맞을 짓을 하면안된다…”라는 이상한 쪽으로 귀결이 된다. 이 괴상한 마무리가 이 칼럼이 하루종일 회자된 이유인 듯하다. 내가 보기엔 일단 요즘 시대에 ‘지식인’이라는 설정이 필요한지 일단 의문이다. 지금처럼 정보가 넘치는 시대에는 지식인보다는 ‘논객’이나 ‘전문가’라는 개념이 더 실효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일단 지식인 뭐 그런 게 있다고 치자. 그런데 여기서 타인의 감성과 의견을 최대한 존중하는 것은 지식인의 기초 자질일 수는 있지만, 핵심 임무가 될 수는 없다. 이것은 주로 농경시대 지식인의 책무다. 즉 “너도 좋아요. 나도 좋아요.” 는 제한된 생산물을 최대한 합리적으로 나눠 먹어야 하는 황희 정승 시절의 얘기일 뿐이다.

 

지금은 국가 권력이 고도로 조직화 되고 각종 정보가 넘쳐나는 현대, 지식의 많고 적음보다는 해당 시점에서 필요한 만큼의 정보를 어떻게 빨리 확보하느냐가 관건인 시절이다. ‘지식의 재고’보다는 ‘지식의 속도’가 중요한 시대에는 지식인에게 농경시대와는 전혀 다른 임무가 주어진다.

 

이 시대 지식인의 진짜 책무는 비판을 통해 정보와 권력을 견제하는 역할이다. 현대 지식인의 핵심 임무는 ‘기존의 지식’이나 ‘현재의 권력’을 쉴 새 없이 까대는 일이다. 지식의 탐구 과정에서 얻어진 자기 머릿속의 이상이나 논리에 대해 확신을 갖고 스스로 흥분하기 전에, 주변 현실에 대해 먼저 광범위하게 인정한다거나 현재 사정에 비춰 자기를 먼저 검열하는 행태는 결국 비판자로서 지식인의 역할을 방해한다.
 

왜 그럴까? 예를 들어 제퍼슨이 미국독립선언서를 쓰고 있는데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라는 구절을 쓰다 말고 갑자기 ‘이런 젠장 우리 집에도 노예가 있는데..’ 라는 사실을 떠올렸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내가 이렇게 쓰면 옆집 백인 아저씨가 굉장히 기분 나쁠텐데..’라는 현실적 인식이 개입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 순간 인류 역사의 위대한 장을 열었던 그 한 문장은 개칠 떡칠이 되기 시작했을 것이다. 지식인이라는 설정은 즉 ‘지식’ 그 자체의 구성과 재구성에 목매는 사람이라고 설정할 때만 의미가 있다. 따라서 현실의 권력과 기존의 지식을 개 패듯 패고 다니는 것이 지식인의 책무가 된다. 즉 없는 맞을 짓을 만들어서 하고 다니는 게 지식인의 책무다.본 글 출처는 (제 3의 길)에서  기사 교류.